[Money] 금융계의 어두운 영웅...마이클 밀켄..
지에프컨설턴트 조회수:3039
2015-02-03 18:03:00

1.마이클 밀켄Michael Milken, 세간의 평

 

마이클 밀켄(Michael Milken)은 20세기의 가장 영향력 있는 자본가 중 한명이다. 미국의 채권시장 규모는 주식시장을 훨씬 능가한다. 채권시장에서 역사상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했던 인물이 과거 '정크본드(Junk Bond)의 황제'로 불렸던 마이클 밀켄이다.

그를 찬양하는 지지자 중에서는 밀켄을 천재적 금융인, 70~80년대에 거의 혼자 힘으로 고수익 채권시장을 창출한 영웅으로 떠받는다. 밀켄과 인터뷰를 했던 '마이클 모'는 밀켄을 혁신적 기업가들이 자본을 얻을 수 있도록 시장을 '민주화'함으로써 새로운 산업을 창조했다고 극찬을 한다.

자본의 수익을 추구하는 입장에서는 밀켄은 신화적 인물이지만 그의 범법적 행위와 맞물려 비판적으로 밀켄을 바라보는 일각의 시선도 존재한다.

여전히 범죄적 투기꾼으로 표현되는 한편 변함없이 금융권 세계에서는 '금융 천재'와 '황제'로 추켜세워지고 있다. 거대한 부를 일구기 위해서는 때로는 범법행위가 행해진다. 가끔은 화려하게 만개한 꽃 이면에 더럽고 비열한 피가 물들어 있을지 모른다. 가까이는 한국의 삼성, 현대, sk, 한화를 보더라도 2000년대에 각종 비자금이나 여러 문제가 터지지 않았던가. 단지 그들의 처벌은 미미하지만 미국은 그나마 합리적으로 단죄가 이루어진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물론 최근 들어 한국 사법부도 경제적 범죄 행위에 엄벌을 하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밀켄을 비롯해서 포브스에 이름을 오르내리는 인물들의 상을 보면 일종의 대중스타와 흡사하다. 그들은 언론과 각종 저서 등에서 매력과 힘을 겸비한 제국을 확대하는 영웅과 전사로 묘사되고 찬양된다.

그들은 자본주의의 우상이자 시장주의의 꽃이자 금융계의 판타지이다. 여전히 수십억 달러의 자산을 갖고 있는 마이클 밀켄은 자본을 다루고 자본을 통해 더 많은 자본을 창출하고자 하는 금융의 세계에서 여전히, 또한 앞으로도 영웅으로 자리잡고 있을 것이다.

 

'공'과 '과'를 따로 분리해서 판단을 하자면 그가 금융계에 큰 혁신을 해낸 것도 사실이며 그를 통해 수많은 기회와 거기에 따른 큰 수익을 창출한 것도 또 하나의 분명한 사실이다.

논란의 여지가 있는 인물을 평할 때는 '공'과 '과'를 면밀히 비교 분석해야 한다. 그것은 박정희에게도, 이건희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다. 明이 暗을 내쫓아서도 안 되며 暗이 明을 가려서도 안 된다.

 

2.80년대의 금융계 영웅

 

1946년생인 밀켄은 미국 LA의 유대계 가정에서 태어났다. 1965년 일어난 왓츠 폭동이 일어난 후에 자본조달이 시민적 권리라 믿고 금융 분야에서 일하겠다고 결심했다고 후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UC버클리대학을 나오고 와튼MBA를 최우등 성적으로 졸업한 수재형 인물이었다.

졸업 후 드렉셀 번햄 렘버트(Drexel Burnham Lambert) 증권사에 취업해 채권조사부에서 금융산업 경력을 시작한다.

그는 야망으로 가득찬 젊은 워커홀릭이었다. 하루 3~4시간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종일 거래 및 분석에 매달렸다. 회사에서 두 시간 반 정도 떨어진 곳에서 지하철로 출퇴근을 하며 전철 안에서 매일 독서와 사색에 잠겼다. 지하철 안에서 일하고 공부하기 위해 광부들이 쓰는 헤드라이트를 머리에 쓰고 자료를 읽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그의 최근 육성을 인용해보자면, "나는 적어도 1년에 한두번 가만히 앉아서 어떤 분야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곰곰이 생각합니다. 이번 연말에도 나와 아내 로리는 집을 떠나 이틀 동안 책을 읽거나 생각만 했습니다.

1970년부터 1978년까지는 편도 2시간 반 걸리는 회사에 다녔습니다. 이때 말 걸어오는 사람 없이 혼자 생각하고 숙고하는 호사를 누렸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기회가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외부로부터 스스로를 차단하고 진정한 사회적 이슈가 무엇인지 판단하려고 노력합니다. 나는 사회의 당면 과제와 필요를 찾아낼 때, 최상의 기회를 잡을 수 있다고 굳게 믿습니다."

 

밀켄은 MBA 시절 중 전 미국연방준비은행장이었던 히크만이 쓴 크레딧에 관한 논문을 접한 적이 있었다. 신용등급이 낮은 채권이 역사적으로 투자등급 채권보다 오히려 높은 수익률을 냈고 통념과 달리 생각보다 안전하다는 요지의 논문이었다. 

30대 중반인 나이에 회사의 채권부장이었던 밀켄은 1980년부터 정크본드에 기회가 있음을 깨달았다.

정크본드란 신용도가 낮아 위험도는 높지만 그에 따른 보상인 이자율이 높은 회사채다. 채권은 일정 시간 후에 약속한 돈을 받을 수 있는 권리이기 때문에 안정적이며 튼튼한 회사의 채권을 구입하는 경우가 많다.

당시까지 미국 내에서는 안정적인 대기업이 아닌 한 회사채를 발행하기 어려웠다. 그러한 금융시장의 분위기와 관행으로 인해 많은 중소, 중견기업과 신생기업이 미래성이 밝고 어느 정도의 상환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채권을 통한 자금 조달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실정이었다. (물론 부실한 이유로 투기등급을 받는 경우도 상존하는 상황이었다. 때로는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법이다. 부실기업으로 인해 비슷한 규모의 작은 기업들이 금융시장에서 기피되었기 때문이다.)

비록 신용등급은 떨어졌지만 밀켄은 이 정크본드의 시장에 고수익의 가능성이 있다는 것 깨닫고 이들 기업의 채권 시장을 선두주자로 개척하게 되었다. 다른 금융기관이 안정적 돈벌이를 찾고 있을 때 밀켄은 고위험 고수익 시장에 뛰어든 셈이다. 당시 금융계의 블루오션이었던 셈이다.

그들 기업의 회사채는 쓰레기 등급 채권이라 불리우는 '정크본드'로 칭하게 되었다. 밀켄의 생각은 정크본드로 분류된 채권은 더이상 내려갈 수 없는 가격이므로 오히려 투자위험이 적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어떻게 보면 내재가치보다 훨씬 더 하한가를 치는 주식을 보며 더이상 낙하할 가격이 없다는 판단 하에 주식투자하는 것과 비슷한 원리다.

때로는 기회는 남다른 안목에서 비롯되는 법이며 그 안목은 역발상적 사고에서 탄생하는 경우가 많다. 1980년대 밀켄의 경우도 바로 그렇다. 

당시에 남들이 보면 오만하다고 여기겠지만, 무디스나 S&P 같은 신용평가회사들은 기업의 과거를 볼 뿐이지만 자기 자신은 기업의 미래를 보고 평가한다고 스스로 생각했다. 그 자신감을 바탕으로 정크본드에 투자하도록 펀드매니저를 설득하고 권유했다. 어느 세계든 정점의 고지까지 우뚝 서기 위해서는 이러한 극도의 자신감이 필요로 하는 것 같다.

밀켄은 정크본드를 '추락한 천사'(Fallen Angel)' 라고 부르며 적극적으로 사들였다. 비록 지금은 추락한 천사이지만 언젠가는 날개를 다시 펼칠 거라는 비유적 생각을 품고 천사들에게 투자해두면 언젠가는 상황이 변해 가격이 오르면 고수익을 얻을 수 있다고 확신했다.

이러한 투기 등급의 채권은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았지만 마이클 밀켄은 당시 원화로 140조원에 달하는 펀드를 만들어 정크본드에 집중적으로 투자를 해다. 밀컨은 미국 정크본드 시장의 40%를 주물렀다.상대적으로 높은 부도율의 위험을 보상하기 위해 그만큼 높은 이자율을 제공하기 때문에 당시 밀켄은 큰 수익을 얻고 대성공을 겪는다.

밀켄은 자금수요가 많은 벤처, 중소기업들과 투자자들을 연결해 주고 엄청난 수익을 얻게 된다. 1970년대 500만 달러의 연봉을 받던 그의 1987년 연봉은 5억5000만달러에 달했다. 지금 시세로 환산하면 어마어마한 금액이다. 별도로 밀켄은 10억 달러 이상의 성과급으로 챙겨 당시 월스트리트의 신화가 된다. 그가 속했던 변방의 드렉셀 번햄 램버트 증권사는 5위의  상위 투자은행이 된다.  

 

밀켄과 드렉셀만 돈을 번 게 아니었다.

그렇게 밀켄 덕분에 자금을 조달할 수 있게 된 많은 기업이 이 자본을 통해 각종 시설과 연구에 투자를 하게 되었다. 또한 파산 직전의 위기에 빠졌던 기업도 정크본드를 통한 자금 유입으로 숨통을 트이게 되어 생존의 기회를 얻게 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당시의 미국 금융계는 밀켄의 세상이었다. 한편 거대한 자금 동원능력을 갖게 된 밀켄은 대규모 인수 합병 사업에 개입하게 된다. 때로는 한 명의 시작이 전체적 분위기를 이끌고 그 세계의 관행을 바꾸는 경우가 생긴다.

1980년대의 기업 인수합병 시장에서 LBO방식이 성행하는 되는 것도 마이클 밀켄과 크게 무관하지 않다. 밀켄은 LBO 거래의 스폰서로서 고수익채권을 발행하였다. 당시에는 새롭고 획기적인 투자상품을 금융기관들에게 제공한 것이다.

LBO를 활용하는 그로 인해 촉발된 인수합병의 세계는 여러 복합기업을 해체하여 보다 민첩하고 전략적인 기업으로 변신시켰다. 동시에 행해진 구조조정과 개혁의 작업은 미국을 80년대 후반 이후 장기 호황의 발판이 되었다. 더불어 1990년대 이후 미국이 지식 기반 산업 중심으로 재편되는데 어느 정도 주요의 역할을 했다는 평을 추후에 듣게 된다.

반면에 1980년대부터 성행했던 LBO 열풍은 1990년 들어서는 역풍을 만났게 됐다. 은행의 금융권으로부터 직접 자본을 조달하기 힘든 경우에는 기업을 인수하기 위해 정크본드를 활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밀켄이 내부거래로 몰락하고 그로 인해 드렉셀사가 파산하고 난 뒤 역시 정크본드 시세 역시 추락하고 말았다. '추락한 천사'는 그렇게 다시 날지를 못하며 한없이 추락하게 된 셈이다.

 

3.마이클 밀켄의 몰락

 

화무십일홍 권불십년인 것인가. 십년도 못 가 그의 질주는 멈추고 끝내 몰락하게 되었다.

 그와 함께 당시 금융계의 투기를 이끌던 이반 보스키는 돈을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탐욕꾼이었다. 인수합병 관련 내부정도를 빼내 단기매매로 돈을 버는 수법과 LBO로 회사를 인수한 후 그 회사의 자산을 팔아 부채를 갚고 회계장부를 조작해 비싸게 파는 기업 사냥을 하는 방법으로 거액을 벌었다. 이반 보스키는 영화 '월스트리트'의 고든 게코의 모델이었다.

"Greed is good." , 이 영화의 명대사는 이반 보스키가 1986년에 강연했던 미국 캘리포니아대 비즈니스 스쿨 특강에서 “탐욕은 정당하며 건전한 것이다. 여러분은 탐욕스러워질 수 있으며, 탐욕스러운 자신에 대해 만족하게 될 것이다”에서 따온 것이다.
마이클 밀켄은 이반 보스키와 결탁함으로써 몰락을 자초하게 된다. 보스키는 밀켄으로부터 한 기업의 내부정보를 얻게 되고 그로 인해 큰 시세차익을 획득하였다. 그 이익금을 서로 나눠 가졌으나 그들을 유심히 감시하던 증권거래위(SEC)에 1984년 범법 혐의를 포착당하게 된다. 

먼저 체포된 보스키는 검찰과의 거래로 자신의 형량 감경을 위해 마이클 밀켄과의 거래와 관련된 정보를 넘겼다. 1986년 보스키는 내부거래, 사기 등의 혐의로 기소되어 징역 2년에 벌금 1억달러를 선고받았다. 7년형을 내리겠다는 검찰 당국의 위협에 마이클 밀켄을 팔고 받은 2년형인 것이다.

그를 이어 밀켄은 2년 뒤인 1988년 11월 증권법 위반과 증권사기,내부자거래 등 98개 죄목으로 구속되었다. 밀켄은 종신형을 받았고, 벌금으로 거래금액의 10배가 부과됐다. 밀켄은 유죄 인정하면서 징역 10년으로 감형을 받았고 그와 함께 벌금 6억 달러를 선고받았다. 밀켄의 벌금은 개인 사상 최고액이었다. 그가 근무하고, 그가 키웠던 5위의 투자은행인 드렉셀증권사는 벌금 6억5,000만달러를 낸 뒤 결국 파산신청과 동시에 몰락하게 됐다.

마이클 밀켄은 감옥에서 1년 10개월을 지낸 후 수형성적이 좋아 1993년 가석방으로 출감하였으나 미국 증권시장에서는 완전히 퇴출됐다. 일단 출소 후 공익시설에서 어린이들을 가르치고 기업임원들을 대상으로 증권특강을 하기도 했다.

 

또한 벌금을 내고도 여전히 억만장자였던 그는 전립선암을 겪고 난 뒤 의학연구재단을 설립했다. 지난 2004년 경제전문지 <포천>은 커버스토리에서 밀켄을 "의료계을 바꿔놓은 사람"이라고 칭찬했다.

댓글[0]

열기 닫기

top